DVD 6장 속으로...
엊그제- 차일피일 해오던 것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지난 자료들을 정리하여 DVD에 보관하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찍은 어릴적 사진부터 지금까지의 가족, 친지, 친구 그리고 십 년 여 담임목회를 하며 부지런히 찍어 놓은 사진 전부, 그리고 역시 지난 십 여 년 동안의 설교, 및 편곡 악보들, 또 칠년 여 동안에 걸쳐 생각날 때마다 적어 본 단상의 글들, 그리고 기관, 행사, 회의, 주보 등의 각종 교회자료들입니다. 모두 담아 보니 4.7GB짜리 DVD로 6장... 한 마디로 저의 일생의 흔적들과 장면들을 모두 담은 것이네요. 그래서 조금은 씁쓸한 기분입니다.
한 사람이 59년간 살아 온 흔적과 장면들이 DVD 6장이라니... 그 중에서도 용량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진’들인데, 그 속에는 저의 ‘돐’ 사진도 있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들... 친구들과 산으로 강으로 기타 둘러메고 돌아다니면서 찍은 10대 시절의 모습들... 군대에서 찍은 것들과 신학생 시절 그리고 전도사 강도사 때의 모습과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몸이 아파서 병원생활을 하던 모습과 한 3년 정도 하였던 연주자시절의 모습... 결혼사진... 부목사시절 성도들과의 모습... 그리고 이 곳 강원도에 와서 찍은 우리 가족사진들과 담임 목사로서의 목회 장면들의 전부입니다.
그래서 폭이 한 뼘도 채 안 되는 동그랗고 납작한 DVD 한 장을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봅니다. 한 30년 전 즈음 개인용 컴퓨터가 밀물 같은 기세로 보급 되면서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만능의 기기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그 확장의 세력이 징기스칸의 그것처럼 세상을 정복하여 나갈 때, 이에 흥분한 어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기록되어진 모든 자료들을 한 대의 컴퓨터 안에 모조리 넣어서 저장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박물관이나 도서관의 자료들을 안방에 앉아서 모조리 꺼내어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과연, -아직은 그렇게까지 되어 지지는 않은 것 같지만- 앞으로 그렇게 되어 질 가능성은 충분하고 또 지금도 자꾸만 그렇게 되어져 가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원간에 분명히 그렇게 되어 질진대- 한 평범한 개인의 역사라면 DVD 까지도 필요 없이 800MB 짜리 CD 한 장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분주히 비행기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세상을 돌고, 또 부지런히 입고 먹고 또 걸치는 것들과 쌓아놓는 것들도 결국에는 ‘기억’ 속의 몇몇 장면들과 역시 몇 페이지의 기록으로 귀결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의 한 평생 살아가는 모습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돌아갔습니다. 살다가 죽어갔고 사랑하다가 사라져 갔고 싸우다가 스러져갔지만, 그 숱한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의 삶’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상기되는 이름들은 아주 극소수이어서 백만 명에 하나 또는 천만 명에 하나 꼴 쯤 되는 것일까요? 하긴, 선대의 이름과 삶의 모습들을 후대가 다 기억하여야 하는 것도, 그렇게 하여야 할 일도 없겠습니다만, 지금을 ‘현재’로 살아가면서 숨 쉬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정해진 소멸’이 어쩐지 안타깝고 그래서 그렇듯 몸부림과 발버둥을 동시에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나쁜 짓을 한 것들이 지금은 숨겨지는 것 같아도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가면 영화 촬영기처럼 촤르르르 돌려지면서 다 드러나기 때문에 감추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 모양에 따라서 상(賞)도 받고 벌(罰)도 받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촬영을 해서 보관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저 어릴 적, 교회 집사님이셨던 어머니께서 저희 남매들- 특히 속깨나 썩였던 ‘저’ 에게 거짓말 같은 ‘죄’에 대한 경각심(警覺心)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종종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저의 모든 일생의 장면들을 DVD로 구워가지고 계시는 것일까요? 이제는 용량의 표기도 테라바이트의 시대이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손톱만한 저장 매체에 이 지구의 창조 때부터의 역사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든 자료들을 몽땅 가지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기는 하지만 속 깊은 곳으로는 찔리는 것이 많아서 애써 감추는 모양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저장이 완료된 6장의 DVD를 이것도 넣어서 틀어보고 저것도 그렇게 하여 봅니다. 거기에는 재미있고, 안타깝고, 후회가 되는 것들과, 또 그리운 장면들이 있고, 그래서 돌아 가보고 싶거나 또는 아주 잊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화면에 펼쳐집니다. “그래... 저랬었구나...” ‘엎질러진 물’이라고 하던가요?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이미 지나가 버린 장면들은 그저 이렇듯 그 지난 흔적으로만 바라보면서 그 시절을 반추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얼음장처럼 차가운 느낌으로 엄숙히 다가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좋게 넉넉히 보아 줄 때에, 앞으로도 DVD 한 장 분량 정도는 새로 만들어 담을 수 있는 시간은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아서 지금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먼 훗날에라도 아빠의 모습을 ‘훈훈함’으로 추억하게 할 수 있을까... 또 자신들의 삶에 귀감을 삼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 괜한 숙제가 한 가지 더 늘었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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