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연합선교회
홈으로 로그인 회원가입 즐겨찾기추가 아바배너링크

의료상담
전체보기
자유게시판
의사친교방
목회자친교방
질문/답변
진료후기
지역섬김 카페
운영위원 카페
사역일지
취재파일
보도자료
공지
아바애경사
사랑의 기도후원
후원자 마당
HOME > 아바카페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욕망이라는 이름의 탱크
IP : 118.44.11.55  글쓴이 : 김홍우   조회 : 5838   작성일 : 10-08-05 10:10:07 |

 

욕망이라는 이름의 탱크

‘욕망’이라는 단어를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보면,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이 해석대로라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이 만족의 고지 갈구하며 나아가는 욕심의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작금의 사회현상 중에서도 끊이지 않고 있는 각종 범죄- 특히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린이 성범죄 같은 것을 보면 그야말로 ‘욕망의 화신’이 되어 저지르는 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욕망’이라고 하는 단어는 좋은 뜻의 문구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부정적인 말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 속에 내재하여 꿈틀대는 욕망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예수님은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바로 육욕의 욕망, 탐하는 마음의 생성 자체를 경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세상의 어느 남자가 이 말씀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가 있겠습니까.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져서 유명하고 그래서 세인에게 익숙하여진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Streetcar named desire)가 있습니다. 여기에 전차는 전동차(電動車)이지만 저는 그보다는 전차(戰車)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욕망이라고 하는 것은 전차(戰車)처럼 무자비하게 사람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중에서도 ‘욕망(Desire)이라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Cemetery)라는 전차’로 갈아타야 한다는 유희적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지금의 전차(戰車)는 곧 ‘탱크’이기 때문에 저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탱크’라는 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탱크의 특성은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힘입니다. 그래서 6·25 당시에 우리는 북한군 탱크에 밀려 잠깐 동안에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지요. 파죽지세의 기세로 밀려오는 탱크의 모습은 바로 ‘괴물’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작금의 시대에도 탱크는 여전히 현대군의 주력입니다. 자신 속에 스스로는 도저히 막아내지 못할 괴물과 같은 욕망이 있다고 말한 사람은 지난 6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초등학생 성폭행자 김아무개입니다. 그는 현장검증 내내 “죄송합니다.... 제 속에 욕망의 괴물이 있어서...”를 연발하였습니다. 


이렇게 표현한다면 언짢을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욕망이라는 괴물’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탱크가 되어 자신의 삶을 깔아뭉개는 것으로 파멸에 이르게 하느냐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의지력에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침없이 욕망의 탱크가 달려 나오게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운전함으로이며 그러기에 또한 자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밑에 깔리는 사람은 적(?)들 뿐만이 아니며 자신까지입니다. 곧 모두의 파멸입니다. 


우리 속에 욕망의 탱크는 결코 없앨 수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함께 가야할 내 속에 있는 ‘내 물건’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시동을 걸지 않는 것’입니다. 즉, 욕망의 탱크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다행히도 그 시동키는 각자의 손에 들려있으며 아무리 50톤 타이거 탱크라고 하여도 시동이 걸려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저 ‘육중한 고철덩어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내 성질대로 확- 밀어 붙이고 싶은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손에 있는 자동차키 아닌 ‘탱크키’를 만지작거립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시동을 건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살인, 강도, 강간의 시동을 건 범죄자들입니다. 비단 그러한 사회범죄 경우만이겠습니까? 히틀러, 김일성 같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수백만을 죽이고도 나몰라라 하는 것을 끝 장면으로 세상을 하직한 자들도 있습니다. 다시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두에게 당면한 문제는 ‘누가 탱크를 몰고 나왔느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탱크를 몰고 나가지 않겠느냐?’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할 이유는- 탱크의 ‘키’를 꼽는 것은 1초도 걸리지 않는 순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前)과 후(後)를 생각지 못하게 하면서 바로 키를 꼽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욱-하는 감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황급히 뛰어나가서 다투지 말라”(잠25:8)고 말씀합니다. 망하는 길이기 때문이며, 바로 성경 도처에서 말씀하고 있는 ‘오래 참고 인내하는 것’을 훈련하여야 할 이유입니다.


혹시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먹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까? 결코 키를 꼽지 마십시오. 그 ‘참지 못한 1초’가 당신의 일생을 파멸로 이끌어 갑니다. 속으로는 임금님도 욕을 할 수 있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내심 끓어오르는 것과 피어오르는 것을 어떻게 없이 하겠습니까. 우리는 다만 ‘끝까지 안 그런 척 한 것’을 공로 삼아 달라고 하나님께 조를 뿐입니다. 그 마저 없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은 우리의 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생각이 나네요. 일전에 한 유치원생 아이가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질문을 갑작스레 하였습니다.


“목사님, 욕망이 뭐예요?”


“글쎄.... 흠.... 욕심 부리면 망하게 된다는 거지 뭐...”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아바회원 여러분들의 건강한 삼복더위극복을 기원합니다.


다음게시물 ▲ 2010 8월 상임위원회 공지
▲ 2010년 아바연합선교회 기도제목
▲ 필리핀 잠발레스 의료선교를 위해 중보를 부탁드립니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탱크
이전게시물 ▼ 전국을 넘어 세계를 품는
▼ 안녕하세요
▼ 할렐루야 아바선교회에 가입하게 되어 감사 합니다.
아바연합선교회
이용약관 메일무단수집거부 개인취급정보방침
아바연합선교회 220-82-06939 대표 박승용 |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808, 관악센추리타워 910호
TEL 02-889-5442 FAX 02-889-5443 Email abba@abbamission.co.kr
copyrights(c)ABB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