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血) 나오는 수도꼭지
며칠 전 TV에서 피가 섞여 나오는 지하수 수도꼭지가 방영 되었습니다. 구제역으로 ‘살처분’하여 인근에 매립된 돼지 사체들에서 흘러나와 지하수로 스며든 것이라고 하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셨습니까? ‘피 나오는 수도꼭지’라 무슨 호러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실제 상황이라니 - 긴 한숨을 쉬게 됩니다.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으로 인하여서 지금 1월 9일 현재 소 십여만 마리, 돼지 팔십만마리 이상이 매몰 된 상황이다 보니 매립장소 인근 농가들이 사용하는 지하수에 피가 스며든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어집니다. 물론, 철저하게 매립원칙을 준수하지 않거나 한 탓이겠지만 워낙 많은 수의 짐승들을 연일 매립하다 보니 혹 한 두 군데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앞으로는 철저히 하면 될 것입니다.
다만, 저는 그렇듯 피가 섞여 나오는 수도꼭지를 보는 순간, ‘아, 우리 인간들이 여기 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남달리 유약한 ‘목사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이기는 하겠습니다만, ‘피 흘리는 세상’이 한껏 우리 코앞으로 전진 배치되어 온 것 같아서 왠지 서늘한 느낌입니다.
‘피’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치거나 죽어야 나오는 것인데 이렇듯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이 지구가 그 만큼 다치고 병들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또한 세상이 더욱 다치고 죽는 세상으로 자꾸만 더 심화되어 가는 모습임을 보여 줍니다. 사람들은 날마다 지구 곳곳에서 숱한 사람들이 죽이는 것으로, 죽는 것으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만 보더라도 미국에서 또 22살 난 청년이 총기를 무차별 난사한 사건이 생겨서 어린아이를 포함한 여러 명이 죽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는 역시 흘려진 피가 흥건하지 않았겠습니까?
사고이든 살인이든 누군가가 죽지 않았다는 소식을 전하지 않고 끝나는 뉴스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NEWS 라는 단어는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말인데 동서남북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서도 ‘사람이 죽는 일’은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그래서 조금 우울한 과장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피가 흥건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다툼과 거기에서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더 해 집니다....
‘피 나오는 수도꼭지’는 그러한 세상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화면 속에 ‘피 흘리는 일’들이 남의 일처럼만 알고 지금까지는 그저 혀를 차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바다 건너, 강 건너, 산 넘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되었다는- 즉, ‘피 쏟아지는 일’이 그만큼 나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는 묵시적 의미의 전달로서 말입니다.
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내기 위해 바로왕 앞에서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온 나라의 하수가 핏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일강과 크고 작은 하수의 물들 그리고 주전자 속에 있던 물마저도 피가 되어 나오는 쇼킹한 장면을 영상으로 만들어 낸 것은 영화 ‘십계’의 감독 ‘세실 B 드밀’입니다. 만약 드밀 감독이 아직 살아있어서 “이 시대를 예견한 묵시적 장면을 만들었던 것이다”라고 하여도 할 말이 없겠습니다.
사방천지에 물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새빨간 ‘피’가 되어서 넘실대는 모습이란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지요. 카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이면서 흘러내린 ‘피의 유산’이, 아닌 것처럼 이지만 어느덧 우리들의 살벌하고 잔인한 ‘삶의 모습’이 되어 날마다 이어지고 있습니다. 영토 때문에, 돈 때문에, 정욕 때문에, 질투와 시기 때문에, 복수 때문에 피를 부르고 있으며 흘려진 피들은 또 다른 피를 부르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기분이 다운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오. 살처분 돼지 매립장에서 스며든 소량(?)의 피를 가지고 너무 많이 나아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역시 끊이지 않고 계속 되는 세상 속의 총성과 점점 더 그 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현재의 모습을 - ‘피 나오는 수도꼭지’가 앞서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셔야 할 맑은 물을 지하수로 만들어 저장해 놓으셨지만, 거기에 피를 섞고 있는 것은 우리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살의(殺意)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지난 역사 속에서 밝히 증명된 바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광기로서의 피의 역사’입니다.
중요하고도 우울한 것은 그 한 가운데 내가 서있고 당신이 서있고 우리 모두가 서있다는 것입니다. ‘피의 대세’는 날로 그 세력을 확장하여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것을 피하여 나와 우리 가족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의지하는 것뿐입니다. 2천년 전 사도들의 외침이 생각납니다. 마라나타-!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