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섬주섬...
아내가 낡은 옷가지와 바느질 통을 들고 나오더니 가위로 쓱쓱 손바닥만한 천 조각을 오려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잠옷에 덧대어 기우는 바느질을 시작합니다.
“뭐 하는 거요?”
“잠옷이 낡아서 찢어지는 곳이 있어서요...”
눈도 안 돌리고 대답합니다. 어제 저희 집사람의 오후 일과의 한 장면입니다. 밖에는 눈이 많이 온데다가 날씨 또한 몇 십 년만의 추위라고 하는지라 행여 작은 온기라도 새어 나갈까봐 사방에 문이라는 문은 꼭꼭 닫아놓고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인데 이렇듯 낡은 잠옷을 꿰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거기에 겹쳐지니 어쩐지 더욱 춥고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아니 지금 돈 못 버는 목사 남편에게 시위를 하는 건가? 그깟 잠옷이 얼마나 한다고- 한 벌 사 입으면 될 것을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심기가 조금 불편해지려고 하는데 아내가 불쑥 먼저 하는 말 한마디가 심난함을 더해 줍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이거, 저 지난 번에 아이들하고 서울 올라갔을 때 남대문 시장에서 산거잖아요. 이제 너무 낡아서 조금만 힘이 닿으면 쉽게 찢어져요. 터진다고 해야 되나...”
그러고 보니 벌써 꽤 오래 전에 무슨 일로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갔다가 남대문 시장에 들러서 꼬치 어묵도 사먹고 한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산 것이라고 하는데 어찌 되었건 지금 세상에 누가 찢어진 잠옷에 손바닥만한 천을 대어 가면서 기워 입는다고 그렇게 궁상을 떠는 거요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습니다. 그러면서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세월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 아니 중학교 시절 즈음까지만 하여도 교과서 ‘실과’ 책 속에는 ‘구멍난 양말 꿰매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구멍 난 양말 뒤꿈치 쪽으로 전구를 밀어 넣어 둥그렇게 만들고서... 하는 문장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무엇이라도 재생시켜서 사용하여야 했던 근검절약 시대의 풍경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그때는 양말은 물론, 찢어진 고무신도 때워 신고, 운동화도 꿰매어 신고, 부서진 우산과 구멍난 냄비도 고쳐주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구두 뒷굽에 징을 박아서 신었습니다. 아이들의 궁둥이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커다랗고 두툼하게 덧대어 꿰맨 천들의 모양들이 마치 빈대떡을 하나씩 붙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콧물을 휘날리며 신나게 뛰어놀았었는데...
두 번째는 항상 예쁘고 깔끔했던 아내의 ‘처녓적 패션’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더욱 그랬겠지만 어디를 살펴보아도 실밥 한 토막도 허투로 얹혀진 모양이 없었고 늘 깔끔하게 닦여진 구두코가 인상적이었던 ‘단정무쌍’한 아가씨였는데 나한테 시집와서 20 여년 세월을 보내는 중에 드디어 ‘낡은 잠옷을 꿰매 입는 산골 여인’이 되었구나 하는 곳까지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더욱 애잔함으로 쓸쓸하여 집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나도 지금 입고 있는 오리털 파카가 20년도 훨씬 넘은 것이잖아, 런던포근가 뭔가 하는- 삼성에서 나한테 상 줘야 돼, 암 그렇고 말고. 이건 가져다가 박물관에 전시하고...’ 괜한 심술의 마음이 올라오는 것을 보니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과 철이 드는 것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하시던 이전 어르신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뭐 어때요. 잠 잘 때만 입는 건데-”
그러고 보니 재작년인가도 한 번 같은 일에 슬쩍 핀잔을 주는 나에게 한 소리가 기억납니다. 외출복도 아니고 일상복도 아니며 말 그대로 ‘잠잘 때만’ 입는 것이니까 누구에게 보여 줄 일도 없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남편 된 사람의 코 끗을 찡- 하게 하는 것은 염두에도 없단 말인가 이 둔한 여인이여--- 그러나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 모양을 보니 그렇듯 근검절약 하는 아내가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요 입는 것 먹는 것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소. 살림은 넉넉지 않지만 두 딸아이들과 더불어서 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우리 가정이잖소. 그리고 23년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언성 높이는 부부 싸움’같은 것은 해 본적이 없고 또 서로를 향하여 ‘여보-’소리 조차도 어쩐지 어색하다는 핑계를 대어가며 서로의 처녀 총각 적 부끄러움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경어를 쓰면서 배려하는 모양의 이어짐으로 아이들로부터 우리 아빠 엄마 최고잉꼬라는 칭찬까지 들으니 이쯤에서 “우리가정 만세!!”를 삼창하는 것으로 자족 자긍하여도 지극히 마땅한 것이라 생각되오. OO엄마, 사랑합니다.
추신- 나중에 이 글을 보더라도 절대로 펄펄 뛰지 말아요. 없는 살림에 뭐라도 더 찢어지면 어떻게 하겠소.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