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뉴스 전하기 운동을 합시다
TV에서 뉴스를 보면서 “쯧쯧...” 혀를 차거나 깊은 한 숨에 개탄을 실어내게 되는 것은 저 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들이 열심히 전하는 내용들의 대부분이 ‘좋지 않은’ 소식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누구를 죽였다, 때렸다, 훔쳤다, 하는 도둑 강도 횡령하는 자들의 소식과, 사고 났다, 무너졌다, 국회에서 이렇게 싸운다, 공무원들의 기강이 해이 되었다, 식품에서 뭐가 나왔다. 최근에는 구제역 방역이 첫 단추부터 잘못 되었다, 가축 매몰이 날림이어서 뭐가 흘러나온다, 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그렇게 우울한 소식들뿐입니까.
정말 언젠가 들은 “일기예보를 빼놓고는 전부가 도둑놈들 이야기뿐...”이라는 말이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더 선명하게 머리 속을 맴돕니다. 물론 모두가 ‘사실보도’이겠지만, 이같이 좋지 않은 사실보도에 조그맣게 라도 곁들여질 만한 ‘좋은 소식’이 우리 사회 속에 그렇게도 없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안 좋은 일들의 보도는 듣는 이들에게 자성과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 사회의 악함과 못남에 대한 지적이며 책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뉴스를 공공방송들이 서로 앞 다투어가며 연일 계속하고 있는데 - 과연 이러한 방식의 뉴스보도가 우리 국민들과 사회에, 또 자라나는 아이들의 바른 심성 형성에 유익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국영수의 로봇’로 만들지 않기 위해 곳곳에서 ‘인성교육’을 부르짖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말로, 책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모습 아름답고 본이 되는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바른 ‘인성’을 갖추게 합니다. 이렇듯 범죄와 갈등의 장면들만이 뉴스 시간에 넘쳐난다면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 된 이들의 마음속에도 상대적 피해의식과 패배감과 자괴감만이 팽배해질 뿐입니다.
이제는 “칭찬하는 뉴스”로 눈을 돌려야 할 때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옳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칭찬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그래서 ‘춤추는 이’들도 많아져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이러한 공영매체들이 앞장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는 것 듣는 것 마다 답답하여 긴 한숨을 쉬게 하는 부정적 분위기가 날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가 긍정적이 되게 하려면 좋은 뉴스 밝은 뉴스를 찾아 전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좋지 않은 뉴스를 보고 듣고 그렇듯 ‘좋지 않은 모양’들이 가득한 사회 속으로 일하러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겠습니까? 또 가볍지 아니한 발걸음이라면 그 하루가 즐겁겠습니까? 그렇듯 만연 된 악한 것들에게 부주의로 자칫 손해를 입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긴장하여 주의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면 사람의 삶이 과연 무엇이며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물론, 각종 어둡고 그늘진 소식들도 모두에게 알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밝고 명랑한’ 소식들이 함께 전하여지는 것으로 경직과 분개와 피해의식을 중화하고 희석시켜야 합니다. 나쁜 소식에 익숙해지는 사람들은 점점 더 그 강도가 높은 것을 원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 사람들의 숨길 수 없는 속성이 ‘나보다 잘 난 이들의 소식’ 보다는 ‘나보다 못한 이들의 소식’을 들으면서 자위하고 자존감을 세워가기를 원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여도 사회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공영방송들이 앞장서서 이렇듯 ‘어두운 소식’들만을 전하는 모습에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우견은 이렇습니다. 최소한 뉴스의 10% 이상을 좋은 소식, 밝은 소식, 웃음과 감동을 주는 소식으로 편성하게끔 하여야 합니다. 실상 우리 사회 속에는 밝은 소식 좋은 모습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왜 애써 밝은 곳을 외면하고 어두운 곳만을 조명합니까. 우리는 그러한 좋은 일들을 접하여야 하고 공영방송들은 애써 전하여야 합니다. 어떻게든 좋은 소식들을 많이 찾아내고 전하여 ‘즐거운 사회, 칭찬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국가의 ‘행복한 미래’는 번창하는 경제와 사업의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착하고 정직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가장 앞서야 할 선도매체가 바로 신문, TV, 인터넷 등입니다. 어둡고 우울한 사회는 검은 돈의 흐름과 양산을 계속하게 할 뿐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누군가의 허물이 지적되고 때려지고 비난받고 까발려지는 것을 연속하여 보는 것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칭찬이며 격려이고 누군가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거니와 ‘지적과 책망과 반성’의 뉴스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위로와 칭찬과 격려’의 뉴스는 더욱 필요합니다. 모처럼 TV 앞에 앉았을 때, 훈훈한 뉴스, 착한 이웃들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기를 원합니다. 즐거운 날들로 이어가는 우리 사회가 될 것입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11-3-4